사마리아인(Samaritans)
사마리아 성읍이나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. 이들도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족속들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적대감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. 그 적대감은 사마리아인들이 BC 721년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자 일부 주민들이 추방당하고 이방인들이 그 땅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생겨난 혼혈족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다.
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구실일 뿐,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있어온 남조와 북조의 불협화음이라는 골 깊은 반목과 갈등이 근본적인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. 즉 솔로몬이 죽은 뒤 통일왕국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큰 불행의 역사가 바로 세겜에서 일어난 것이다. 세겜의 중요성이 나중에 사마리아로 옮겨갔을 뿐이다.
그 후 BC 6세기에 유대인들이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면서 사마리아인들의 도움을 거부했다. BC 4세기에 이르러 사마리아 분파가 그리심 산에 유대인들과 경쟁하여 성전을 세우고 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약 성경을 거부하자 비로소 그 분파는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.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인종과 종교 양면에서 잡종이라고, 즉 혼혈인이자 이교도이며 분파주의자라고 멸시했다. 요한이 ‘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았다’(요 4:9)고 한 진술은 이런 배경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이다.
사마리아인들의 신앙:
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일 뿐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는다. 그들은 모세를 최후의 예언자나 최고의 사도, 또는 초인적인 존재로 여긴다.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이 그리심 산이며, 이 산은 토라에 명시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장소라고 믿는다(신 11:29-30; 12:5-14). 따라서 이들은 엘리 제사장이 그리심 산이 아닌 실로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면서 유대인들이 진리에서 떠나게 되었다고 보며(삼상 1-3장 참고), 포로 귀환 후 에스라가 성전 재건을 예루살렘에 한 것 역시 모세 오경을 거스르는 범죄였다고 본다.
신약에서의 사마리아인들:
사마리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호의는 특별히 누가복음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(눅 9:52-56; 10:30-37; 17:11-19).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특별히 명하셨다(행 1:8). 빌립은 ‘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’(요 4:25)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했으며, 표적을 행했고,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다(행 8:5-8).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물 세례만을 받았던 그들을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했다(행 8:14-17).
이처럼 신약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우호적이었으며, 사마리아인들 역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전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. 이것은 초대교회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마리아인들을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.
출처:두란노 비전성경사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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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지도] 모압 평지
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고 모압 평지에 도착하였습니다.
이제 곧 가나안에 들어갈 예정입니다.
포로에서 귀환한 에스라 학사가 최종 형태로 기록했다고 합니다. (주전 450년경)
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고별설교입니다. 설교의 내용은 레위기의 율법에 대한 설명입니다.
[표] 신명기 권 구성